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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거지론
    매일매일/너무나 색다른 2021. 10. 27. 16:36

    인터넷에서 설거지론이 한참 이야기가 시끌시끌하다. 정확하게는 시끌시끌한지도 좀 됐지만 아직도 시끌한거 보면...

     

     

      현실을 돌아보면 설거지론은 생각보다 굉장히 험난한 필터링을 필요로 한다.

    1. 연애경험이 사실상 전무한 남자

       1-1. 어느정도 경제적인 바탕이 되는 남자

    2. 과거 자유로운 연애경험(특히 섹스를 강조한다)이 많은 여자

    3. 이 둘의 결혼 이후 생활은 남편 외벌이

    4. 제한된 용돈과 팍팍한 결혼 생활

      적어도 이정도는 충족해야 설거지론에 해당하는 남자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하나씩 살펴보자면

     

    1. 손가락 꼽을만큼 있긴 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1-1까지 충족하는 남자는 현재 내 주변인물중엔 없다.

    2. 연애를 쉬지 않던 친구들은 좀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들이 섹스에 환장한 것도 아니며 남자친구가 어마어마하게 잘생기거나 했던 것들도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연애하고 헤어지고 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3. 손으로 꼽는다. 내가 알고있는 기혼커플이 10이라면 이중에 외벌이는 1~2정도다.

    4. 자세히 모른다. 굳이 알려고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자세히 알 일 없는 4를 제외하고 1~3만 봐도 내 주변에 이에 모두 해당하는 커플은 없다. 내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보기에는, 난 지극히 일반적인 아싸 중 하나다. 평범한 일반 초등학교, 남중남고를 나왔고, 수능을 오래보긴 했다만 평범하게 인서울 대학에 입학해서 평범한 나이의 평범한 직장인들을 몇 없지만 친구로 둔 평범한 아싸다. 

      물론 그럼에도 내가 특이한 케이스일 수 있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나보다 아싸인 사람은 손에 꼽는다고 생각한다) 저런 케이스에 해당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30대를 기준으로 기혼자는 50퍼센트가량일 뿐이고 그 중에서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이며 심지어 남자가 연애경험이 없다? 저런 케이스는 더더욱 드물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렇게 시끄러운 것 치고는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 안되는 소수라는 소리다.

     

    그럼 이런 소수의 이야기가 왜 공감이 늘어나고 설거지론이 점점 더 퍼져가는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공감의 절대 숫자가 적을지언정 설거지론의 영향이 퍼져감에 따라서 공감글들도 같이 퍼져나가니까 더 커보일 수도 있고, 1~4 중 몇가지가 해당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설거지론에 해당하는 퐁퐁단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중요한건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서 포인트는 남녀 갈등의 등에 엎혀 기혼자들을 조롱하는 이 유머가 현대사회에 너무나 잘 들어 맞는다는 것이다. 설거지론에 해당되는 커플은 오히려 과거가 더 많았을거다. 하지만 그 커플의 자식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하려고 보니, 부모님의 모습이나, 지금 사회의 모습이나 엉망진창이라고 느끼고 있고, 그런 상황에 결혼이라는 테마가 도저히 나에게 맞지도 않고, 할 상황도 안되는데 사회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결혼이라는 문턱에 넘었는데 그것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있고 조금씩 퍼지던 결혼생활의 불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실제 설거지론과 관계없이 '내 결혼은 행복하지 않다'라는 기준점에 다들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며 '거봐, 역시 결혼은 잘못됐어'라는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고 더욱 퍼다나른다. 

      설거지론의 바탕에는 찐따들의 역전심리가 들어있다. 한국에서 결혼은 최근까지 '해야만 하는' 것 중 하나였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심리가 강했다. 2~30대의 혼인률이 바닥을 기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경우엔 결혼을 성공의 척도 중 하나로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지원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 이라는 미친 턱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뭐 심리적 문제도 크겠지만. 난 네이버/쿠팡에서 제일 싼 반팔티 찾아 입어도 내 와이프는 명품 입히고 싶은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당연한 마음일테니.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심리적이든 경제적이든 안정된 자리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난 그 안정된 자리까지 가는 것을 성공의 기준 중 하나로 보고있고, 결혼은 그래서 성공의 척도다. 이렇듯 과거와 이유는 다를지라도, 기혼/미혼의 선택에 있어서 기혼이 더 우위에 있는 선택이라는 부분은 변함없다. 그리고 설거지론은 결혼을 선택한 대상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주장한다.

      설거지론은 결혼의 환상과 현실 모두를 부정한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이미 수년간 깨져왔다. 그리고 이젠 현실적인 결혼생활마저 배우자에 대한 과거를 추궁하게 만들고, 현재 가정생활에 대해 의문을 갖게끔 만들어 그 토대를 깨고있다.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극단의 부정으로 가고 있다. '미혼은 문제가 아니다'를 넘어서 '결혼이 문제다'라고, 혼자 살면 이렇게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결혼해서 힘들어지냐고.

     

      지극히 삐딱하고 질 나쁜 유머요소다. 출발이 DC였고, 정치비하와 비슷하게 다른 여느 DC의 유머요소들처럼 대충 그 안에서 소비되고, 그 안에서 깔깔대다가 조용히 사그라들 컨텐츠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즉 설거지론은 무리한 결혼이라는 문화가 부정적으로 자리잡히게 만드는 출발점에 있다고 본다. 기존에는 똑같이 팍팍한 가정생활에 ATM으로 살았어도 '그래도 결혼한 이유가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럴거면 뭐하러 같이 사냐? 라고 말했을 때 그래도 혼자 있는 거랑은 다르지. 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응~퐁퐁단~' 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점점 이에 공감하고 있다. 결혼은 더더욱 높은 문턱이 되어가고 있다. '행복한 우리'를 바랄 수 없어 '행복한 나'라도 바라는 미혼/찐따들의 빈정거림으로 시작한 조롱이 대상자에게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지금은 결혼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외벌이 부부만을 설거지론으로 조롱하고 있지만, 이후에는 어떤 다른 타겟으로 결혼한 부부들을 조롱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저출산의 위기에 공감하지만, 나중엔 출산마저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 안타까운 모습이다. 참으로.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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