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감상일 - 2020. 0229
-전도연, 정우성. 그리고 배우들
나는 사실 전도연에 대해서 크게 임팩트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전도연에 대한 가장 좋은 기억은 내마음의 풍금이고 전도연이 출연한 영화들을 거의 보지 않았다. 밀양, 너는 내 운명, 해피엔드, 접속, 무뢰한, 하녀 뭐 기타등등등등등 손꼽는 작품이야 많지만 난 안 봤고 나에게 전도연은 사람들이 항상 칭찬하는 그냥 그런 존재다. 그에 반해 정우성은 좀 다르다. 상대적으로 주연인데 꽤나 다작을 하는 사람이고, 진짜 욕나오게 잘생긴 얼굴덕에 항상 영화가 아쉬울지언정 정우성의 임팩트는 남아있다. 특히 정우성이 고르는 작품들이 항상 좋은 작품들은 아닌지라, 나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적당히 좋은거 보고 적당히 나쁜거 본다. 와 이게 정우성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 아닐까. 아무튼.
이 둘만으로도 사실 타임킬링용으로 영화 볼 수 있다. 나에겐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왜 그렇게 칭찬을 듣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고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연기로 이렇게 안 잘생겨보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물론 안 잘생긴거다. 정우성이 어떤 연기든 다 해내는 세상 단 하나의 배우라 할지라도 이 사람이 이 얼굴을 가진 이상 못생길 수는 없다. 특히 둘이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나는 정말로 빵 터졌는데, 정우성의 안 잘생겨보이는 연기와 전도연의 매력이 같이 뿜어져나오는 씬이라 극장에 사람도 별로 없는데 혼자 현웃터져서 낄낄거리고 웃음 참느라 힘들었다.
이게 사실 내가 영화 보기 전 홍보물을 제대로 안봐서 몰랐는데, 영화 포스터에 왜 있는건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이 몇 있다. 이래서 내가 홍보를 잘 안봐. 저거 보고 영화봤으면 이상하게 감 잡다가 의아해서 물음표 띄우고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전도연과 정우성을 제외하고 포스터에 있는 여섯명이 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방향성이 어긋나있고 교차점이 생기는 부분에서도 맞다. 근데...아 좀 아닌 것 같은데.... 뭐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니까. 그래도 저 배우들+저기 없는 배우들도 멋진 모습을 보여줘서. 배우들 보는 맛은 충분했던 영화다.
-빠진 나사들을 모아서 만들면
사실 영화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 든다. 일단 시작할 때 구분되는 챕터를 보면, 특히 한국 영화에선 '아 또냐'라는 생각이 든다. 장점이 되면 좋으련만, 비슷하게 했다가 아쉬웠던 영화들이 많으니까. 그저 챕터구분을 개연성/설명을 생략하기위한 도구로 툭툭 끊어서 넘어가기 편해서 쓰는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드니까. 다행히도 이 영화는 시간을 꼬아서 보여주면서 이 단점을 보완했다. 사실 시간을 꼬는 방법조차도 이제는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시간을 꼬는 것도 불만이지만, 감독은 여기에 살짝 장치들을 추가해 내 머리에 중간중간 작은 물음표가 뜨게 만들었다. 그러면 성공이지. 대놓고 제대로 꼬아놓지 않았기에 애매한 느낌이고, 꼬아놓은 요소가 뭐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이 장치는 단점이기만 했을 진행방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세밀하게 해결하지 않았다. 인물의 심리묘사를 세세하게 하지 않고, 상황과 분위기, 배우의 연기력으로 커버친다. 사실 여러 등장인물이 나와서 하나하나 묘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서 영화가 좀 더 길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배우의 연기력으로 커버가 됐으니까 이것도 애매-하지만 그래도 좋다고 그냥 넘어갈 느낌.
뭐 미장센이 좋다는 평도 있던데, 엄청 치켜세울 미장센도 아니다. 물론 나쁜건 아니지만....
이 영화가 그렇다. 아 나쁜건 아닌데, 그래서 얼마나 좋냐라고 물어보면 또 거기에 아 그렇게까지 좋은건 아닌 그런 영화다. 영화의 요소요소를 나누면 10점 만점에 6~7점씩 받지 않을까? 그런데, 이걸 적절히 잘 섞어냈다. 뻔한 시간섞기를 적절하게 녹여냈고, 캐릭터는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매꿔낸다. 그리고 일단 영화의 중심은 확실하다. 돈. 여기에 중간중간 감독의 블랙코미디를 섞어 넣으면서 매꿔놓는다. 이 블랙코미디가 나에겐 너무나 저격인지라,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요소가 되었다. 적어도, 6~7점짜리들 요소 가지고 3~4점짜리 만드는 감독은 아닌거잖아.
-그래서
재료는 최상급중에 최상급이다. 그리고 식당의 분위기도 꽤 그럴싸하다. 그런데, 아 맛이 없는건 아닌데, 맛집이라고 찾아간 것 치고는 사실 그렇게 빼어난 느낌은 안 든다. 이거 어디서 잘 찾으면 동네에도 있을 것만 같고 막 그렇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 동네에 이정도 맛집 없다. ㄹㅇ 재료빨인가 싶다가도 꼭 그렇진 않은 것 같고.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뭐. 아무튼 정우성 전도연 봤잖아.